하늘억새길 2구간 단조성터길-하늘이 숨긴 길
하늘이 숨긴 성, 단조성
호국의 전진기지 단조성
영축산 염소바위에 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.
머리 위를 선회하던 솔개가 타는 눈빛으로 신불산상벌 억새밭을 향해 쏜살 같이 내리 꼽더니
까투리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.
신불산 빨치산을 아 지트를 정찰하던 B-29 폭격기 같기도 하고,
사나운 독수리처럼 도사리 는 영축산 단조성 같기도 했다.
영축산 단조성은 생긴 모양이 단지 모양이라 하여 항성이라 기록되어 있으나,
멀리 신불산에서 바라보면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을 띠고 있다.
옛 문헌에는 단조성은 취서산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.
산 아래 사는 민초들은 하늘 가까운 곳에 있어 ‘하늘성’, 또는 ‘만리성’, ‘단지성’이라 부르기도 한다.
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산분지에 있는 고성이라 출입구만 막으면 능히 적을 저지 할 수 있는 수성 형태의 석성이다.
조선조 영조 2년 (1727)에 이곳을 다녀간 암행어사 박문수는
‘한 사람이 성문을 닫고 지키면 만 사람도 열지 못할 것’이라고 읽었다.
<신불산 단조성_줄지어 늘어선 석축>
단조성은 정확한 축조연대 기록이 없다.
야별초, 삼별초, 몽골 침입 을 당했던 역사적이 현장이라는 설,
신라시대에 가야국을 관찰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는 설, 임진왜란 당시 축조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
어느 것 하나 정확한 축조연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.
일부 학자는 5세기 에 쌓은 단조성을 임진왜란 때 활용 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.
언양현 읍지에는 단조성은 언양현에서 남쪽 13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, 영축산 남문에서
단조봉 북문 산꼭대까지 그 둘레는 약 4.050자로 긴 벨트를 이룬 성으로, 축성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.
광무 3년 (1899)에 펴낸 언양읍지와 고종 31년(1894)에 발간한 언양읍지에는 단지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,
성안에는 천지가 있어 비가 올 때나 가뭄 때나 물의 양이 변함이 없고, 식수용 못이 10군데 있다고 한다.
하늘억새길 2구간 단조성터길-하늘이 숨긴 길
하늘이 숨긴 성, 단조성
호국의 전진기지 단조성
영축산 염소바위에 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.
머리 위를 선회하던 솔개가 타는 눈빛으로 신불산상벌 억새밭을 향해 쏜살 같이 내리 꼽더니
까투리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.
신불산 빨치산을 아 지트를 정찰하던 B-29 폭격기 같기도 하고,
사나운 독수리처럼 도사리 는 영축산 단조성 같기도 했다.
영축산 단조성은 생긴 모양이 단지 모양이라 하여 항성이라 기록되어 있으나,
멀리 신불산에서 바라보면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을 띠고 있다.
옛 문헌에는 단조성은 취서산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.
산 아래 사는 민초들은 하늘 가까운 곳에 있어 ‘하늘성’, 또는 ‘만리성’, ‘단지성’이라 부르기도 한다.
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산분지에 있는 고성이라 출입구만 막으면 능히 적을 저지 할 수 있는 수성 형태의 석성이다.
조선조 영조 2년 (1727)에 이곳을 다녀간 암행어사 박문수는
‘한 사람이 성문을 닫고 지키면 만 사람도 열지 못할 것’이라고 읽었다.
<신불산 단조성_줄지어 늘어선 석축>
단조성은 정확한 축조연대 기록이 없다.
야별초, 삼별초, 몽골 침입 을 당했던 역사적이 현장이라는 설,
신라시대에 가야국을 관찰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는 설, 임진왜란 당시 축조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
어느 것 하나 정확한 축조연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.
일부 학자는 5세기 에 쌓은 단조성을 임진왜란 때 활용 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.
언양현 읍지에는 단조성은 언양현에서 남쪽 13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, 영축산 남문에서
단조봉 북문 산꼭대까지 그 둘레는 약 4.050자로 긴 벨트를 이룬 성으로, 축성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.
광무 3년 (1899)에 펴낸 언양읍지와 고종 31년(1894)에 발간한 언양읍지에는 단지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,
성안에는 천지가 있어 비가 올 때나 가뭄 때나 물의 양이 변함이 없고, 식수용 못이 10군데 있다고 한다.